AI 교육의 두 얼굴: 구글의 ‘맞춤형 학습’ 혁신과 인문학적 가치의 위기
인공지능(AI)이 교육 현장의 풍경을 급격하게 바꾸고 있다. 기존의 정형화된 교과서 중심 교육이 AI 기술과 결합해 개인 맞춤형 학습으로 진화하는 가운데, 이러한 기술 만능주의가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도덕적 가치관 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기술적 효용성과 인문학적 본질 사이에서 교육계가 마주한 새로운 딜레마를 조명해 본다.
천편일률적인 교과서의 종말과 ‘런 유어 웨이’의 등장
오랜 시간 교실의 중심을 지켜온 종이 교과서는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방식의 학습을 강요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구글이 새롭게 선보인 AI 학습 도구 ‘런 유어 웨이(Learn Your Way)’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이 기술은 기존 교과서 내용을 AI가 분석한 뒤, 학생 개개인의 관심사와 취미를 반영하여 맞춤형 학습 자료로 재가공해 제공한다.
구글의 리서치 매니저인 코트니 헬드레스 박사는 뉴스네이션(NewsNation)과의 인터뷰에서 ‘이중 부호화 이론(Dual coding theory)’을 언급하며 이 도구의 설계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자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할 때 개념에 대한 정신적 모델이 더욱 견고해지고, 결과적으로 학습 효과가 강화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학생들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몰입형 자료, 슬라이드, 오디오 내레이션, 마인드맵 등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변환된 콘텐츠를 선택해 학습할 수 있다.
데이터로 입증된 학습 몰입도와 성적 향상
실제 현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구글의 초기 테스트에 참여한 고등학생 시드니 부첼트 양은 “긴 글을 읽다 보면 금방 지루해져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딴짓을 하곤 했는데, 다양한 학습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되니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학생 닐 쿠빅 군 역시 “글자만 읽다 보면 내용이 뒤섞이기 쉬운데, 요약 기능을 통해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이러한 긍정적 반응은 실제 수치로도 증명되었다. 구글이 고등학생 6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 결과, ‘런 유어 웨이’를 사용한 학생들은 기존 교과서로 공부한 대조군보다 시험 성적이 8% 더 높게 나타났다. 더욱 주목할 점은 장기 기억력이다. 일주일 후 실시된 재시험에서 AI 도구를 활용한 그룹은 대조군보다 무려 11%나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헬드레스 박사는 이에 대해 “이 도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등급 하나를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이해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진보가 교육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조나단 J. 샌포드 댈러스 대학교 총장은 AI가 학생들에게 자신과 사회에 대한 깊이 없는, 심지어는 왜곡된 이해를 심어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앤디 케슬러가 제기한 ‘AI가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가?’라는 의문에 동의하면서도, 단순히 교실에 기술을 도입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샌포드 총장은 학생들이 이미 거대언어모델(LLM)을 통해 심오한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가 직접 구글의 제미나이(Gemini)에게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AI는 인간의 본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개인적인 창조”를 추구하라는 식의 답변을 내놓았다. 또한 “애국심은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사회적 필요성이나 도덕적 선(善)보다는 “복잡한 이상”이자 “상당한 위험”을 내포한 개념으로 묘사했다.
AI 시대, 다시 인문학(Liberal-Arts)을 말하다
이러한 사례는 AI가 효율적인 정보 전달자일 수는 있어도, 인간의 도덕성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스승이 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샌포드 총장은 AI가 제공하는 정보 중에는 터무니없거나 사실이 아닌 내용이 섞여 있으며, 이는 학생들에게 그릇된 자아상을 심어줄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기술이 인간의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도덕과 습관까지 가르칠 수는 없다. 진정한 지식을 전수하고 다음 세대가 AI를 올바르게 활용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은 기술이 아닌 인문학 교육의 몫이다. 구글의 새로운 도구가 보여주듯 AI는 학습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단을 통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지혜는 여전히 인간 고유의 영역인 리버럴 아츠(Liberal-Arts) 교육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